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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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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종목소개2019-03-18 11: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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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싱의 유래
  • BC 4,000년 무렵에도 이미 왕의 군대가 무술 훈련의 하나로 복싱을 익혔음이 확인되었고 BC 3,000년 무렵 크레타(Creta)섬의 항아리에서도 복싱 경기 장면이 그려진 것을 발견하였다. 이후 그리스로 전파되었고 BC 668년 제23회 고대올림픽대회 때부터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경기가 치러졌다. 대회가 거듭될수록 인기가 높아져 BC 616년 제41회 대회부터는 소년부 경기가 추가되기도 했다. 이후 카톨릭신부들의 요청으로 로마 황제 호노라스가 복싱경기를 전면 금지시켰으나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음지에서 행해지던 복싱이 부활하기 시작하였다. 근대적인 의미의 복싱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 1743년 잭 브로턴 (Jack Broughton)이 세계 최초의 복싱 규칙으로 알려진 "브로턴 코드 (Broughton Code)" 를 제정함으로써 복싱이 스포츠의 틀을 갖추도록 하였다. 이후 1867년 존 그레이엄 체임버스 (J.G. Chambers)에 의해 비신사보내기적인 행동을 금지하고 현재 복싱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갖춘 "퀸즈베리 룰 (Queensberry Rules)"을 제정하였다. 896년 근대 올림픽대회를 계기로 단체가 결성되기 시작했으며 국제복싱협회 (AIBA, Association Internationale de Boxer Amatuer)는 1946년 영국과 프랑스의 복싱협회의 주도하에 결성되어 세계복싱의 중심 역할을 맡게되었다. 

정의

사각의 링(ring) 안에서 손으로 상대방의 신체 전면 벨트라인(belt line) 위쪽을 타격하여 승패를 결정하는 경기.

내용

복싱은 공이나 기구를 이용하는 경기와 달리 몸과 몸이 순간적으로 맞부딪치기 때문에 어느 경기보다 민첩성과 순발력이 동시에 필요한 경기이다.

복싱시합 때의 운동량은 1회전 3분을 끊임없이 공격과 방어로 격돌한다고 할 때, 100m달리기를 최대한으로 한 이상의 강도가 부하()된다.

복싱의 초기 형태에 관한 기록은 서기전 2500년경부터 나타난다. 그리스에서는 복싱은 물론 판크라치온(pankration)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복싱과 레슬링의 혼합형 경기까지 실시되었다. 이 경기는 서기전 776년 제우스신을 경배하기 위하여 열린 고대올림픽의 한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복싱은 서기전 688년부터 판크라티온은 서기전 648년부터 시행되었고, 제41회 고대올림픽대회 때부터는 소년복싱도 성행하게 되었다.

로마시대에는 직업적인 권투선수가 등장하여 생사를 판가름하는 잔혹한 시합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에 404년 로마황제 호노라스는 이를 금지시키기도 하였으나, 비공식적으로는 계속 행해졌다.

16세기에 영국에서 복싱이 재현되어 1719년에는 복싱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743년에는 7개 조항으로 된 복싱규칙이 정해졌다. 그러나 현대복싱경기의 기초가 되는 규칙은 1865년 퀸즈베리규칙(Queensbery resolution)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전 세계적인 전파는 1896년 근대올림픽 이후부터이다. 근대올림픽 개최 이후 세계 각국은 각기 복싱연맹을 결성하였고, 1946년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을 결성하였다.

그 뒤 여러 국가에서 아마추어복싱 외에 프로복싱이 성행하게 되었고, 1999년 현재 프로복싱을 관장하는 세계기구로는 세계복싱협회(WBA)·세계복싱협의회(WBC)·국제복싱연맹(IBF)·세계복싱기구(WBO)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 복싱이 최초로 소개된 것은 1912년 10월 7일에 단성사() 주인 박승필()이 유각권구락부()를 조직하면서부터이었다.

그 뒤 1916년 미국 선교사 질레트(Gillette)가 복싱 글러브를 가지고 온 뒤, 1922년부터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연중행사로 거행되었다. 당시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에서는 농구·목마·덴마크식 체조 등과 함께 권투경기를 매년 거행하였다.

이 때 우리나라의 이혜택()과 미국인 쉬버와의 공개시합이 거행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1924년 9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에 복싱부를 정식으로 창설하고 체육관에 링을 가설하였다. 1925년 1월 30일 제9회 실내운동회 때 복싱종목이 채택되면서부터 스포츠로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28년에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주최, 동아일보 후원으로 제1회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여 1941년 제14회 대회까지 계속되었다. 1929년 9월 17일에는 식도원()에서 성의경()을 비롯한 30명이 모여 조선복싱회를 발족하였다.

메이지대학()의 황을수()는 재학 당시인 1928년과 1930년에 라이트급 전일본선수권을 획득하였고,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대회에 참가하였다.

1933년 당시의 전 일본 선수권자는 플라이급 서정권(), 밴텀급 황을수, 웰터급 이규환() 등이었다. 특히 이규환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1934년 1월 20일에 전조선아마튜어권투연맹이 창설되었다. 조선권투구락부에서 성의경,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의 이혜택과 장권(), 전조선무덕관권투부의 강낙원(), 경성권투구락부의 김동준()·가나이도시오, 선만복싱회의 다가야스로우, 수원복싱구락부의 서정훈() 등 각 단체에서 2명씩 참가하여 시내 천향원()에서 발족회를 가졌다.

초대 회장에 유억겸(), 부회장에 김규광()을 추대하였고, 이사는 성의경·김정학()·김영구()·강낙원·윤종덕()이었고, 감사는 윤종진()·정인긍()으로 결정하였다. 그 뒤 1936년 제2대 회장에 윤치호(), 1938년 제3대회장에 고원훈()이 취임하였다.

우리나라 복싱선수가 일본에서 선수권을 획득하고 일본선수로 올림픽대회에 참가하는 등 한때 일본 복싱계를 주름잡았지만, 일제에 의하여 복싱이 적성스포츠로 배격되어 민족항일기 말기에는 많은 복싱인이 중국으로 가서 상해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 때 몇몇 복싱인들은 독립투사를 돕는 등 복싱 외적인 기여를 하기도 하였다. 8·15광복 뒤 귀국한 복싱인들은 복싱도장을 차리고 후진양성에 나서는 한편 복싱단체를 조직하였다.

1945년 문현승()을 중심으로 대한권투연합회가 결성되고, 황을수를 중심으로 조선권투연맹이 결성되었다. 1947년 3월 이 두 단체는 대한권투연맹으로 통합되었다가 1960년대 초에 한국권투위원회로 개편되어 현재까지 프로권투를 관장하고 있다.

한편, 1945년 10월 23일 조선아마튜어권투연맹이 창립되어 초대 회장에 안동원()이 취임하였다. 조선아마튜어권투연맹은 1947년 국제아마튜어복싱연맹에 가입하였고, 아시아지역의 복싱발전을 위하여 1962년 아시아아마튜어복싱연맹(FAABC)을 창설하였다.

1964년 7월에는 총회에서 ‘권투’라는 용어 대신 순수한 스포츠로서 발전시키려는 뜻에서 원어 그대로 ‘복싱’이라고 부르도록 하였고, 연맹명칭도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이라고 정하였다.

이들의 주요 등용문으로서는 전국신인선수권대회(3·4월)·대통령배전국시도대항선수권대회(5·6월)·전국체육대회(10월)·전국선수권대회(11월) 및 전국중고대학생선수권대회·김명복배전국학생선수권대회 등이 있다.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에서 처음으로 한수안()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한 뒤로, 1952년 제15회 헬싱키올림픽대회에서 강준호()선수가 동메달을, 1956년 제16회 멜버른올림픽대회에서 송순천()선수가 은메달을,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대회에서 정신조()선수가 은메달을, 1968년 제19회 멕시코시티올림픽대회에서 지용주()선수가 은메달을, 장순길()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1984년 제23회 로스엔젤레스올림픽대회에서는 신준섭()선수가 올림픽대회 복싱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러한 대회들을 통하여 배출된 우리나라 복싱선수들은 1986년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전체급을 석권함으로써 복싱 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서는 김광선()·박시헌()선수가 금메달을, 백현만()선수가 은메달을, 이재혁()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여 개최국의 기상을 한층 높여 주었다.

그 뒤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대회에서 동메달 2개를, 1996년 제26회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 1개를 획득하였다.

(1) 경기규칙

아마추어복싱은 3분 3회전에 1분씩 휴식을 한다. 승부는 정권()으로 벨트라인 위를 가격한 유효타로 판정되는데, 판정의 종류는 판정승, 기권승, 주심의 경기중단(RSC), 실격승, KO승, 부전승 등이 있다. 경기대진은 토너먼트식(tournament)으로 추첨하며 2회연속 부전승은 재추첨하게 된다.

(2) 체급

라이트플라이급부터 슈퍼헤비급까지 12체급이 있다. 각 체급은 라이트플라이급(48㎏ 미만)·플라이급(48㎏ 이상∼51㎏ 미만)·밴텀급(51㎏ 이상∼54㎏ 미만)·페더급(54㎏ 이상∼57㎏ 미만)·라이트급(57㎏ 이상∼60㎏ 미만)·라이트웰터급(60㎏ 이상∼63.5㎏ 미만)·웰터급(63.5㎏ 이상∼67㎏ 미만)·라이트미들급(67㎏ 이상∼71㎏ 미만)·미들급(71㎏ 이상∼75㎏ 미만)·라이트헤비급(75㎏ 이상∼81㎏ 미만)·헤비급(81㎏ 이상∼91㎏ 미만)·슈퍼헤비급(91㎏ 이상) 등이다.

(3) 시설 및 용구

링의 설치는 최소한 4.9∼6.1㎡의 넓이에 로프를 40·80·130㎝의 높이로 세 줄로 둘러싸야 하고, 선수와 임원이 사용할 계단을 만들어야 한다.

복싱경기의 사용용구는 글러브·프로텍터·마우스피스·헤드기어·붕대 등이며, 연습에 필요한 용구에는 모래주머니(sand bag)·연습용글러브와 체중조절훈련에 필요한 각종 기구들이 있다.

(4) 경기복장

가슴과 등을 가릴 수 있는 런닝셔츠와 넓적다리 반까지 닿는 팬티를 입는다. 그런데 프로복싱에는 팬티만 입도록 하고 있다. 특히 경기복장에서 바클과 같은 금속제품류와 같이 위험성이 있는 것은 착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5) 라운드

세계선수권, 올림픽 혹은 지역선수권대회에서는 3라운드 각 3분씩 한다. 경고, 주의, 복장이나 용구를 재정비하는 시간 또는 기타 이유로 인해 지연되는 시간은 3분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라운드 사이에 정확하게 1분 휴식시간을 갖는다.

이 이상의 라운드는 갖을 수 없다. 국제대회에서는 라운드는 위와 동일하나 사전에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3분씩 4라운드 혹은 2분씩 5∼6라운드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라운드 사이에 1분간의 휴식을 하여야 한다.

(6) 계체량 및 추첨규정

세계선수권, 올림픽경기대회, 지역선수권대회, 국제선수권대회와 국제경기대회의 계체량 및 추첨규정은 다음과 같다.

① 모든 체급의 선수들은 대회 최초 당일 추첨으로 경기를 갖게 되는데 최초일 계체량은 8:00∼10:00에 하지만 다음 경기날부터는 경기가 있는 선수만 8:00∼9:00사이에 계체량을 필히 해야 한다.

만약 불가피하게 지연되는 일이 발생하였을 때 상기 시간의 사소한 연장은 AIBA집행위원회는 계체량 종료시간으로 정하여진 시간 후 3시간 전에는 개시하지 못한다. 또한 그러한 시간 이내의 경기는 집행위원회가 의료위원회와 상의한 뒤 결정을 내릴 때 가능하다.

② 계체량은 AIBA 공인 임원에 의하여 실시된다. 각 선수가 소속하는 각 국가 연맹의 대표는 계체량에 참가할 수 있으나 계체량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③ 제1일 공식 계체량시 등록된 체중은 전 경기기간중 선수의 체급을 결정한다. 선수는 시합이 있는 그날 그날 계체량을 해야 한다.

④ 매일 계체량시 선수는 단, 1회에 한하여 공식저울에 설 수 있으며 그때의 체중이 최종적인 체중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본래의 계체량에서 체중을 조절하지 못한 국가의 선수에게는 더 높은 체급이나 낮은 체급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 경우 해당국가가 그 체급에 출전할 수 없고 또한 계체량이 아직 종료되지 않은 체급에 한 한다. 또한 후보선수가 허용되는 경기에 있어서 교체선수가 해당체급 또는 기타 다른 체급의 후보 선수로 등록된 경우에 최초 계체량과 의료검사 종료 전까지는 다른 후보선수로 교체할 수 있다.

⑤ 국가간 경기 또는 국제 경기에 있어서 선수 계체량은 30분 이내에 끝낼 수 있다. 계체량에 합격되지 않거나 계체량 시간 내에 나타나지 않는 선수는 패자로 선언된다.

⑥ 선수는 계체량 이전에 EC에서 지명된 자격있는 의사로 부터 경기를 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 EC는 계체량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조기에 의료검사를 실시하도록 결정할 수도 있다.

(7) 부전승

4인의 선수이상이 참가하는 경기에서는 2차전에서 4, 8, 16 혹은 32까지 선수 숫자를 위하여 1회전에서 적절한 수의 부전승을 추첨한다. 1회전에서 부전승을 한 선수는 2차 전에서 첫 번째 시합을 갖는다. 만약 부전승의 숫자가 기수일 경우 부전승 마지막 선수 가 1회전 첫번째 승자와 시합을 한다.

부전승의 숫자가 우수일 경우 부전승을 추첨한 선수들은 그들의 추첨한 순서로 2차전에서 첫 번째 경기를 갖는다. 선수는 어떠한 경우에도 1회전, 2회전 연속 부전승을 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가 생겼을 때는 전회전에서 부전승을 거치지 않고 남아있는 다른 선수끼리 추첨하여 추첨된 첫 번째 선수가 전회전에서 부전승을 한 선수와 대전한다. 그 다음 보통방법으로 새로 추첨한다.

(8) 세컨드

각 선수는 다음 룰에 의거 규정한 세컨드 및 1인의 보조 세컨드를 동반할 권리가 있다. 세컨드는 보조세컨드 만 링에 오를 수 있고, 1명 만 링 안에 들어 갈 수 있다.

경기도중에는 세컨드, 혹은 보조세컨드가 링의 바닥에 있을 수 없다. 세컨드 혹은 보조 세컨드는 라운드가 시작되기 이전에 링의 바닥으로부터 의자·타올·양동이 등을 치워야 한다.

세컨드는 코너에서 자기 일을 하는 동안 그의 복서를 위하여 스폰지나 타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컨드는 자기편 선수가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된 때에 는 레퍼리가 카운트를 하고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링안에 스폰지나 수건을 넣을 수 있다.

R/J위원회 의장은 매 대회마다 그 대회에서 종사하는 R/J와 세컨드들에게 소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회의에서 AIBA규칙이 적용될 것임을 주지시키고 만약 규칙을 위반할 경우 점수뿐만 아니라 선수권도 박탈당할 것임을 강조한다.

(9) 추첨

추첨은 계체량과 의료검사 종료 후 실시된다. 추첨은 관계팀의 대표임원이 참석한 가운 데 실시되며 가능한 한 모든 선수가 최저 1회전도 하기 전에 다른 선수가 2회전 시합을 하지 않도록 추첨한다.

AIBA집행위원회는 특별한 경우 본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추첨은 1회전에서 대전한 선수를 먼저 뽑고 다음에 부전승자를 뽑는다. 세계, 지역선수권, 혹은 올림픽 대회에서는 대전을 하지 않은 선수에게 메달을 수여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대한체육회70년사』(대한체육회, 1991)
  • 『복싱』(스포츠과학연구소, 대한체육회, 1983)
  • 『스포츠사전』(김종선, 금화출판사, 1981)
  • 『투기』(박형춘·손형구, 국정교과서주식회사, 1980)
  • 『최신복싱교본』(손형구, 진명문화사, 1972)

    [네이버 지식백과] 복싱 [boxing]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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